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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 시리즈,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벧후1:10)
  • 기사등록 2025-05-23 12:12:32
  • 기사수정 2025-05-29 16: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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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두 목사(세계로선민교회 담임) 저서 「구원은 영원한가?」(523-532p 인용) 

  

 

(벧후 1: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벧후 1: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벧후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벧후 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구원이 확정되었음을 굳게 믿으라



위 본문 벧후 1:8-11을 한 절씩 주해한다.



(벧후 1: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1. 구원받은 성도는 '신성한 성품'으로 살아간다.


위 8절의 "이런 것"(8)은 전 5-7절의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의 성품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 1:5-7).

이런 성품을 4절에서 "신성한 성품"이라고 말하고,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이런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 1:4).


그러므로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는 모두 이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그래서 성도는 누구든지 이 '신성한 성품'으로 살아간다. '신성한 성품'은 하나님과 예수의 성품이다.
베드로는 구원받아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 성도들에게 늘 그 성품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베드로는 8절에서 자기가 가르치는 성도들이 '신성한 성품'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흡족'하다고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아 열매 있는 자가 되라고 권면한다. 구원받은 성도는 "신성한 성품"으로 살아간다.
 

2.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를 알기에 힘써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예를 들어본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의해 자녀가 출생한다. 그 자녀는 처음에는 자기 부모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래서 철없이 지낼 때가 많다. 그러나 자라면서 알아간다. 부모를 모를 때는 철없이 살다가 알아갈수록 부모의 은혜를 깨닫게 된다. 많이 알수록 훌륭한 자녀가 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철없을 때나 장성한 때나 자녀의 신분은 변함없다는 것이다. 철없다고 자녀가 아닌 게 아니다. 단지 부모를 근심케 한다. 그럴 때는 교훈을 위해 징계를 받는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출생한 성도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본 벧후 1:8의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힘써'라는 뜻이다. 베드로는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예수를 더욱 알기 위해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다하라고 말한다.


물론 성도가 "게으르"다고 해서 구원이 취소되는 것은 아니다. '게으름'이나 '부지런함'은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구원은 오직 예수영접에 있다. 예수영접 후 예수를 더욱 알아갈수록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는다.

예수를 처음 믿어 구원받을 때는 그를 구주로 믿은 것이 전부다. 예수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은 믿는 즉시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성도는 예수에 대한 그 기초지식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기초지식 위에 더욱 알기를 힘써야 한다. 왜냐하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성경이 예수에 대해 다양하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하여 예수에 대해 풍성히 배워가야 한다.


구원받은 후 예수를 알기에 힘쓰는 이유는 열매를 풍성히 맺기 위함이다. 예수에 대한 지식이 많아질수록 그에 대한 감사가 넘치고 4-7절에 설명한 '신성한 성품'으로 살게 된다. '신성한 성품'으로 살면 자연히 예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풍성히 맺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8)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힘써 신성한 성품으로 열매를 풍성히 맺는 자가 되려니와"이다.



(벧후 1: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위 9절의 "이런 것"은 8절의 "이런 것"과 같은 것으로서 4-7절의 '신성한 성품'을 말한다. "이런 것(신성한 성품)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고 표현하고, 그 맹인은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은 자라고 말한다.
"잊었느니라"(3024 레데 lethe, 2983 람바노 lambano)는 '주의하지 않다, 부주의하다. 잘 잊다'를 의미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옛 죄가 깨끗하게" 되었으면서도 그 사실을 부주의함으로 잊은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이 깨끗하기 전 상태로 회귀한 게 하니라, 단지 그 사실을 기억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구원이 취소된 게 아니라, 구원받은 사실을 기억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맹인"은 두 가지의 경우가 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앞에 두고도 눈이 어두워 그를 구원자로 알아보지 못하는 맹인으로서 그를 믿지 않아 구원받지 못하는 자를 말하고,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어 그의 피로 깨끗하게 된 성도가 눈이 어두워 자기가 예수의 피로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은 맹인의 경우를 말한다. 본문의 "맹인"은 후자의 경우를 말한다.
전자는 구원받지 못하는 맹인이고, 후자는 구원은 받았으나 예수의 피로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고 신성한 성품으로 살지 못하는 맹인을 뜻한다. 성도가 예수의 피로 깨끗하게 된 것을 잊으면 신성한 성품으로 살 수 없고, 잊지 아니하면 늘 자기를 깨끗하게 하여 신성한 성품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도가 예수의 피로 죄가 깨끗하게 한 것을 잊으면 구원이 취소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신성한 성품으로 신앙생활하지 못하고 열매를 풍성히 맺지 못하는 것뿐이다.
물론 계속 더럽게 살면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징계를 내리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의 피로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벧후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 '굳게 하라'는 '확실히 기억하라'이다.


본 10절의 "그러므로"는 9절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9)에 이은 "그러므로"로서 '그러므로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말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9절에서 "잊었느니라"라고 말하고, 이어 10절에서 '잊지 말라'고 하려는 것이다.
"부르심과 택하심"은 하나님이 예수의 피로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부르시고 택하신 것을 말한다. 예수의 피로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 때문이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이 없으면 죄가 깨끗하게 될 수 없다. 예수의 피로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9),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과(10) 같다.

"굳게"(949 베바이오스 bebaios)는 '확신하는, 확실한, 분명히, 튼튼한 기초를 가진'을 의미한다.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는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확실히 잊지 말라", "확실히 기억하라", "확실한 기초를 가지라"이다.

2. '굳게 하라'는 구원이 취소되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 아니다.


여기의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성도가 굳게 잡아 구원이 취소되지 않도록 하라는 게 아니다. "부르심"과 "택하심"은 하나님 쪽에서 하시는 일이지 사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잡으시는 분은 오히려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9절처럼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만 할 수 있다.


예수께서 창조의 일을 하셨다. 사람은 창조에 관여한 바 없다. 그래서 그 창조가 무너지지 않도록 붙드시는 분도 예수시다. 사람은 그것을 굳게 붙들 수 없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께서 창조하신 때부터 지금까지 만물을 붙드신다고 증거한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예수는 창조와 만물을 붙드시는 일을 하고 성도는 그런 예수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만 할 수 있다.

또 바울과 요한은 성도의 구원도 성도가 지키는 게 아니라, 예수께서 굳게 지키신다고 말한다.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살후 3:3).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예수)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베드로도 본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성도가 굳게 붙드는 게 아니라, 확실히 기억하라는 뜻으로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한 것이다. "굳게 하라"는 구원이 취소되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 아니라, 확실히 기억하라는 뜻이다. 

 

3. 부르심과 택하심을 기억하면 신성한 성품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을 너희가 행하면"(10)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너희가 확실히 기억하면"이다.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는 '신앙생활에서 항상 신성한 성품으로 살아가고 사람의 육체 성품으로 실족하지 아니하리라'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의 피로 죄가 깨끗하게 되었음을 확실히 기억하면, 곧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확실히 기억하면 신앙생활에서 항상 신성한 성품으로 살아가고 사람의 육체 성품으로 실족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의 육체 성품으로 사는 것은 "실족"이다. "실족"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예수를 믿지 않아 구원받지 못하는 실족이고, 둘째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으나 신앙생활에서 신성한 성품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사람의 육체 성품으로 사는 실족이다. 본절의 "실족"은 후자의 실족이다. 

 

예를 들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도둑질하거나 간음하면 그것은 신성한 성품에서 실족한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가 이런 실족을 하면 하나님이 싫어하신다. 계속 실족하면 구원은 받으나 징계를 받는다. 그러므로 신성한 성품을 실족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가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피로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확실히 기억하면 언제든지 신성한 성품으로 살아갈 수 있고 그 신성한 성품에서 실족하지 않을 수 있다. 

 

10절을 풀어 말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형제들아(예수 피로 죄가 깨끗해져 구원이 확정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너희를 부르시고 택하셔서 예수의 피로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지 말고 확실히 기억하기를 힘쓰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너희가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확실히 기억하면)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언제든지 깨끗한 신의 성품으로 칭찬받는 삶을 살게 되고, 더러운 육체 성품으로 징계받는 삶으로 실족하지 아니하리라)(10)

 

 

(벧후 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여기의 "이같이 하면"(11)은 '너희가 앞의 10절 같이 하면'이다. '10절 같이 하면'을 풀어 말하면 '너희가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확실히 기억하여 신성한 성품으로 살아가면'이다. 신성한 성품으로 살아가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이다.

 

반대로 신성한 성품에서 사람의 육체 성품으로 실족하면 열매가 아니라 징계를 받을 것이다. 신성한 성품으로 살면 많은 열매를 맺고 종말에 천국에 들어갈 때에 풍성한 상을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부르심과 택하심을 확실히 기억하여 신성한 성품으로 살아가면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때에 풍성한 상을 주실 것이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주시리라"고 말한다.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주시리라"는 것은 구원을 넉넉히 주신다는 게 아니라, 신성한 성품으로 열매 맺은 삶에 대해 상을 넉넉히 주실 것을 말한다.

 

"넉넉히"(4146 플루시오스 plusios)는 '풍성히, 부유하게, 넘치게'를 의미한다. "주시리라"(2023 에피코레게오 epichoregeo)는 '주다, 공급하다, 보급하다, 지불하다, 제공하다'이다.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는 '풍성히 상을 주시리라'는 뜻이다.

 

 

기독교연합방송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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